Boosting self-esteem for those who injured their own pride (자존감 수업, 윤홍균)

요즘 들어 심리학에 관심이 생겼다. 심리학을 체화하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어서 공부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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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서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납득했는데도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자존심 싸움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자존심이 쎄다는 말은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가치가 상대방에게 낮춰보이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것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예외없이 자존감이 낮은 시기를 한번 이상 겪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존감이 낮다는 사실에 좌절할 필요가 없다. 또 대부분 사람들은 자존감을 회복하고 살아가고 있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고 생각했으면 한다.(자신의 상처가 크다고 생각할수록 스스로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도 무의식적으로 자존감이 많이 내려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나 자신도 과거로부터 좀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내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난 대학교 1~2학년 전까지는 자존감이 낮아 외부 자극들을 대부분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내 자신을 지키기에 바빴다. 어릴 때부터 상황 속에 갇혀 혼자 생각을 많이 했고, 타인과의 충분한 공감 없이 내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정립되어서 그렇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때는 내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특히 나한테 그것을 강요할 때면 무시, 회피, 짜증, 분노로 반응하며 내 생각을 주지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에 반대하면서, 나는 방어하기에도 점점 지쳐갔고, 외로움과 인간관계에 허무함을 느끼고 점점 혼자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나한테서 포기하고 물러섰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끝까지 나를 고쳐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만난지 반 년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앞으로 10년을 볼 사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들어줄 줄 알았나. 도대체 나에게 어디까지 바라는건지 모르겠지만, 이런식으로 서로 안 맞으면 나도 더 이상 못 참겠다.’
문제는 그 당시 나의 대학생활과도 다름이 없었던 동아리에서 그 형과 계속 마주쳐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신경 안 쓰고 넘어갈 법도 한데 그 형은 매번 사소한 것까지도 지적했다. 대부분은 그 형이 맞는 말을 하고 내가 야단 맞는 분위기인거 같아서 공개적으로 화내기도 좀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형 때문에 문제를 일으켜 다른 동기들과의 사이마저도 틀어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형은 나에게 계속 싫은 소리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너와 나는 계속 볼 사이니까 잘못된 점은 빨리 말하고 고치게 하는게 진정 너를 위한 일인거 같다며 계속해서 나를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형이 주로 말하는 ‘잘못된 점’이란 나의 배려 없는 행동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잘해주려고 한 일인데 상대방은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의 좋은 의도를 어필하고 이해해주길 바랬으나 도무지 상대방에겐 통하지 않았다.
마음 속의 분함을 참지 못해서인지 계속 그 일을 생각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때로는 그 형이 잘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생각났지만 그 형한테만큼은 죽어도 사과하기 싫었다. 나를 그렇게 깎아먹은 사람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만큼 내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드는 방법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계를 끝내버릴 수도 없었다. 이미 나는 다른 활동은 접고 이 동아리에만 충실하고 있었고, 같이 있는 동기들과도 사이가 멀어질 것이 너무 두려웠다.
그 형은 계속 나에게 와서 말했다. “생각해보니 어때? 니가 잘못했지? 그럼 그만 고집 부리고 그냥 미안하다고 해라. 사과한다고 니가 어떻게 되는거 아냐.” 나는 마지못해 “아 그래 미안하다고. 됐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제 남들이 그 일을 두고두고 꺼내며 나를 더 얕볼까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형은 의외로 뒤끝이 없었던 편이었다. 오히려 평소 때처럼 나를 변함없이 대해주었고, 여느 때처럼 또 지적하며 설명하려고 엄청 노력했다. ‘그냥 내가 못나 보이면 그렇다고 솔직히 표현하는게 더 나은데, 오히려 내가 더 불편해.’
두번째 사과할 때는 첫번째처럼 퉁명스러웠지만 그나마 입 밖으로 내기는 좀 쉬웠다. 그 형은 계속 일관된 태도를 보였고,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말 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걸까?’
그때 누가 옆에서 ‘사람들은 변하지 않았어. 단지 너가 생각하는거에 따라서 사람들의 반응을 다르게 해석할 뿐이야. 너가 너 자신을 낮게 보지 않으면, 어느 누가 너에게 지적을 하거나 욕을 하든 그것이 너 자신을 깎아내릴 수는 없어.’ 라고 말해주었다면 내가 좀 더 빨리 나아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 사실을 인정하는데(사실 지금도 인정하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겠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다. 그 당시에 교회 IVF나 힐링 캠프 등에 참석하여 활동했던 것도 내가 인정하는 시기를 좀 더 앞당겨주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에게 지적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나를 신경써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맥락에서, 나를 비난하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내가 주눅 들거나 같이 화낼 필요가 없고,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진심어린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부분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방어기제가 발동된 것이지 진짜로 나에게 악의가 있어서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P.S. : 최근에도 심리학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왜 나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 가토 다이조 (あの人はなぜ,ささいなことで怒りだすのか 隱された「本當の氣持ち」に氣づく心理學 / 加藤諦三)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심리학 / 가토 다이조 (人生の重荷を輕くする40のヒント / 加藤諦三)
지능의 사생활 / 가나자와 사토시 (The intelligence paradox / Kanazawa, Satoshi)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 책 중 2권이나 e-book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지금 한국으로 간 회사 동료에게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그가 이번 주말이면 오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책을 받을 수 있다!
책을 너무 많이 주문하기에는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지능의 사생활과 클루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클루지는 휴리스틱으로 인한 실수에 관한 내용인데, 보다 긍정적인 느낌(?)의 책을 먼저 읽고 싶어서 지능의 사생활을 주문했다.